박 경의
기억의 일류젼(Illusion), 그 감각(感覺)의 조형성(造形性)
일찍이 논리적인 줄거리를 외면하고 심리주의(心理主義)소설을 창시(創始)하였으며 20세기의 새로운 문학의 장을 연 프랑스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는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유년기(幼年期)의 기억(記憶)’을 비논리적(非論理的)인 지각(知覺)에 의해 기록(記錄)하였으며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의 원류(原流)였던 스페인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는 일치하지 않은 시(時), 공간(空間), 그리고 장(場)을 편집(編輯)하여 구성(構成)함으로서 새로운 미술사(美術史)를 정립(定立)하였다. 우리의 삶과 역사는 일상(日常)의 양태(樣態)에 따라, 정의(正意)와 진실(眞實)의 오류(誤謬)에 따라, 그리고 기억(記憶)의 일류젼(Illusion)에 따라 오도(誤導)되어질 수 있다.
박 경은 이러한 삶과 역사(歷史)에 따를 수 있는 부조리(不條理)를 인식하고 경계(警戒)하며 성찰(省察)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시(視), 청(聽), 후각(嗅覺) 등 오감(五感)을 유기적(有機的)으로 연계(連繫)시키고 시각화(視覺化)시켜간다. 논리보다는 감성(感性)과 기억의 가변성(可變性)을, 기억속의 공간과 오감의 실마리를 연계시키며 심층적(深層的)으로 분석, 전개, 재구성(再構成)해간다. 잘못된 기억과 기록(記錄)이 사람들의 분쟁(紛爭)은 물론 이념적(理念的)인 갈등(葛藤)까지 야기 시킬 수 있음은 현대(現代)를 살아가는 문명인(文明人)의 이기심에서 오는 필연적인 소산물(所産物)인지도 모른다. 박 경은 현대인들의 문명에 은닉(隱匿)된 일류젼으로 인한 혼돈(混沌;Chaos)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명분(名分) 외에, 작가 자신이 살아온 삶의 흔적(痕迹)들과 경험(經驗)에 의한 사물(事物)들 - 인간, 물질, 익숙한 공간, 향기 등 - 을 서정적 감성(抒情的感性)으로 승화(昇華) 시키고 추상화(抽象化)시켜간다.
박 경은 자신의 조형적인 방법론(方法論)을 심화(深化)시키기 위해서 후각의 심층적 연구에 몰입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마침내 향수(香水)를 연구(硏究)하고 제작(製作)하기에 이르렀다. 작가는 유년기(幼年期)에 모친(母親)의 헤어샵에 걸린 어느 작가의 그림을 봐 왔었으며 영국 유학(遊學) 길에 오른 후, 문득 그 작품의 키 칼라(Key Color)는 청색(靑色)이라고 인식하곤 했었다... 그 인식은 각인(刻印) 되어졌으나 막상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확인(確認)한 그 작품의 주조색(主調色)은 빨강색임을 알게 된다. 그 형상과 색상의 착각(錯覺)의 원인을 유추(類推)하고 체험하기 위해서, 게슈탈트(Gestalt)심리학(心理學)과도 관련(關聯)시키기 위해서, 다시 유학길에 오른 작가의 열정(熱情)은 무엇이 아티스트의 미덕(美德)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작가는 착각이 시, 공간과의 복합적(複合的)인 관계와 세월의 흐름 속에서, 특히 향기(香氣)를 비롯한 다양한 후각의 영향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있음을 인지(認知)하게 된다. 입체와 평면, 설치와 퍼포먼스, 그리고 개념적(槪念的)인 것들의 가시적(可視的)이고 형이하학적(形而下學)인 표현을 위해 다양한 오브제를 등장시키고 연출도(演出) 마다하지 않는다.
바닐라 향, 촛불, 심지꽂이, 울트라머린 안료(Ultramarine Pigment), 다양한 향, 비즈왁스(Beeswax), 수제 오일 향, 아크릴, 육면체(六面體)등을 이용하며... 안락감 있는 코너의 벽에 미리 향을 발라놓고 두 개의 심지꽂이에 불을 붙이면 안료와 향, 그리고 왁스가 벽을 타고 흘러내리게 되고... 시간차에 따라 향의 농도(濃度)가 달라지는 등, 이른바 오토머티즘과 개념적인 퍼포먼스를 접목한 복합적인 예술이 창출되어진다. 유년시절부터 각인된 기억을 되살리며 블루를 위한 회고(回顧)를 위해 육면체 속에 청색 안료와 향을 넣어봄으로서 후각의 편집과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기억의 허구성’, ‘감각의 프리즘’, ‘향기의 시각화’를 지향(志向)한다는 작가의 주장과 그 창조적(創造的)조형성을 주목하며 기대해본다.
글; 박종철(미술평론,칼럼니스트)
기억이 그려낸 형상의 단층들
작가 박경은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것들을 비 형상적 언어를 빌어 회화로 환원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색들의 단층적 구조는 켜켜이 올라 형상화된 기억의 덩어리들인 듯하다. 그래서 그 층층의 구조들은 마티 기억과 체험의 앙금들이 가라앉은 것과 같이 그 형태들을 이루어 내고 있다.
사람들의 뇌는 실로 경이롭고 신비롭다. 예를 들면 여러명이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경험과 체험을 공유해도 각각의 기억이 서로 다른것을 겪은 저기 있을것이다. 왜일까?
그것은 오히려 과학적 증거와 주장에 앞서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걱이 절대적 논고라는 뜻은 결코 아님을 밝혀 두고 싶다.) 사람의 기억, 즉 메모리 장치에는 그 시점의 감성과 상황 혹은 기대치의 반작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기억의 저장고에 그러한 재료들이 엉겨있다가 기억이라는 버튼이 눌러짐과 동시에 표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추억과 기억은 다르다. 그래서 Memory와 Remember의 차이는 분명하다. 그래서 작가는 그 기억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지점에 추억과 혼재된 과거의 잔상들이 지층의 구조를 만들어 내고, 그 저장고에 증거를 작업으로 옮겨 스캔하고 있다. 작가가 들여다본 기억속 스캐니의 단층구조는 단색화된 평면젹 패턴속에 올라간 색감과 지층의 구조들이 자연스레 흘러내려 넓게는 또는 가늘게 색띠를 형성하기도 하는 등 마치 기억의 무지개떡과 같은 구조를 이루어 내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작가가 유학시절 낯선 환경 속에서 조우했던 초상화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막상 한국에 돌아와 실제의 그 초상화를 보니 기억속의 초상화와 실제는 전혀 다른 것임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경험이 이러한 실제와 기억의 간격을 이야기 하는 작업의 단초가 된듯하다.
기억은 경험과 개인의 그 시간적 공간적 상화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 아니 거의 좌우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듯하다. 그 이유인즉 한번의 기억을 간직하고 읽어주는 뇌의 인지증력은 감각과 감성의 채널도 동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그 시간, 그 장소에 봄바람을 타고 흩날리던 연분홍 꽃비 사이로 풀냄새도 함께 우리의 뇌속에 그려지고 바로 그 찰라, 저 먼곳에서 붉은 색 자전거를 유유자적 타며 휘파람을 불고 지나가던 그 기억속의 모습은 뇌의 중간 어느 지점에서 기억으로 반응하고 추억처럼 카메라의 샷과 같이 한컷으로 찍혀진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시각뿐만이 아니라 기억은 후각과 청각 모두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우리는 뺨을 스치던 살랑한 봄바람의 냄새마저도 동반하여 기억의 무중력 속을 더듬거리며 추억으로서 회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대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이라는 저장고에 연분홍 따사로운 봄바람은 어디까지가 실존이고 어디까지가 추억인가, 작가는 길을 묻고 있다.
갤러리 너트 성진민
기억에 지탱하고 있는 감각들에 대하여
박경 작가는 기억에 대해 고찰하는 가운데 기억이 허구적인 경우를 발견하게 되면서 감각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과 사이에서 그와 관련된 영역을 탐색하고 이에 대한 감각의 담론들을 시각화 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는 기억이 허구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과 같은 허구적 설정을 통하여 기억을 자신의 방식에 의해 시각적으로 재구성한다. 사실 기억이라는 것은 감각의 수용기관을 통하여 전달된 감각적 인식들을 저장한 것이며, 그렇게 정장된 기억은 시간의 진행과 함께 점차 망각으로 진행 되거나 변형되어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억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고 기억된 정보를 회상하는 과정에는 정보의 손실과 변형으로 인하여 전도의 차이가 있을 뿐 허구적인 기억으로 재생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작가는 이 때 기억을 변화시키거나 기억을 다시 되살리는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기억이라고 할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공간을 기반으로 한 시각의 감각이 아니라 맛이나 향과 같은 미각이나 후각과 같은 다른 감각들이었다. 마치 빙산에 있어서 수면 위로 떠오른 산을 지탱하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다른 많은 부분들이 있는 것처럼 시각을 근거로 하여 공각적인 상황을 기억해 낼 때 그 저변에 있을 법한 다른 감각을 찾아 나선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조향을 배우는 등의 방식을 통하여 수면 위로 떠올라 있는 기억의 현상적인 이미지보다는 그 현상을 지탱하고 있는 숨어있는 세계를 찾아내고 기억을 발생시키는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즉 향기와 같은 기억의 기반이 되는 다른 감각의 정보들은 기억이 망각화 되거나 변형되는 과정에서 희미해진 이미지들을 다시 복원시키거나 새롭게 재구성해내는 힘이 있다고 본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와같은 관점에서 시각적 감각의 지반 아래를 드러내는 작업을 보여주게 된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주로 회화작업이다. 구체적이고 지시적인 형상적 대상이 생략된 화면에는 색과 질감 그리고 붓의 움직임만을 느낄수 있다. 그래서 무엇을 시각적으로 부기위한 장소라기 보다는 소리나 향기나 맛과같은 다른 감각들이 자극되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작가가 그려낸 무언가를 보고자하는 관객이 있다면 그 무언가를 알아채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그 무언가가 부재한 그 곳에서 색과 질감과 터치로 채워진 화면을 마주한 관객은 자신이 그것을 느끼는 감각에 대해서만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관객들은 박경 작가의 작업에서 그가 전시 주제로 제시한 바와같은 Dr.Kim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보면 Dr,Kim이 부재한 그것에서 허구적 존재일수 있는 그 사람의 향기나 촉감 혹은 음성이 어떤 느낌일까에 대한 상상을 시작할수도 있을 것 같다. 혹은 이때 자신이 만났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Dr.Kim은 이처럼 다른 감각에 의해 재구성되어 관객의 눈 앞에 기억으로부터 홀연히 떠올려져 심상 (Mental Image)이 되어 다가오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사이미술 연구소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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